원화값 하락에…금융사 외화곳간 관리 비상
2024-12-01 HaiPress
금리인하에 원화약세 전망
외화자산 평가액 감소 우려
10원 하락시 위험액 2조 급증
강달러에 기업 외화 수요 늘자
은행 초단기 차입도 5천억 ↑
기업 여신 관리 압박 커질듯
최근 한국은행이 시장 전망을 깨고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깜짝 인하'하며 달러당 원화값 하락에 무게가 실린 가운데 금융권 위험 관리에 경고등이 켜졌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금융회사들이 쥐고 있는 외화 자산 평가액이 줄어 자본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생겼기 때문이다.
강달러에 달러 수요가 늘며 은행들이 초단기로 외화를 빌리는 외화 콜머니도 올 들어서만 5000억원 급증했다. 외화 단기 차입이 증가하며 유동성 지표가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화값이 10원 하락할 때 KB금융·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위험가중자산은 1조9800억원(3분기 기준)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KB국민·하나금융이 5000억원,우리금융이 4000~5000억원 늘고 신한(3800억원)·NH농협금융(1000억원)도 위험치가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위험가중자산은 위험 수준을 감안해 금융회사 자산을 재평가한 수치다. 예컨대 주택담보대출처럼 회수 가능성이 높은 대출은 위험 정도를 낮게,저신용 기업에 준 대출은 위험 가중치를 높게 재산정하는 식이다. 위험 가중치는 외화 부문에서도 쌓인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보유 해외 자산이나 지분 투자분에 대한 원화 환산 평가이익이 줄고 원화값 하락분만큼 웃돈을 주고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외화부채 환산 손실 역시 불어난다. 이 같은 투자 위험을 반영해 위험가중자산이 따라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트럼프 트레이드'에 원화값 하락 속도가 빨라졌는데 지난달 말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춰 낙폭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지난 9월 말 1319.6원이었던 원화값은 지난달 말 1394.7원으로 1400원 선을 넘나들며 100원 가까이 추락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 인하기에 4분기 이익 증가세가 둔화할 전망인데 원화값까지 하락하며 연말에 보다 적극적으로 위험 자본 관리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달러 몸값이 높아지며 은행 간 초단기로 외화를 빌리는 콜머니도 부쩍 늘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들이 미리 외화 자금을 확보하려고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개인투자자가 미국 주식·채권 투자를 늘림에 따라 은행이 증권사 환전 수요에 대응한 영향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3분기 콜머니 평균 잔액은 4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4조3000억원)보다 5000억원 늘었다.
콜머니 등 단기 차입 증가는 유동성 지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콜머니 등 단기 자금은 원화값 변동에 따라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단기 유동성 지표인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LCR은 은행에 위기가 닥쳐 돈이 빠져나갈 때 현재 은행이 보유한 자산으로 이를 감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0일간 순현금유출액 대비 현금,예수금,국공채 등 고유동성 자산의 보유 비율로 산출하는데 금융당국은 은행이 LCR을 97.5% 이상 갖출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아직 5대 시중은행 LCR은 115~163%로 양호하지만,향후 원화값 향방에 따라 LCR도 급락할 수 있어 위험 대비에 분주하다.
당장 은행권은 외화 여신을 더 까다롭게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원화값 하락에 취약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여신은 추후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달러 거래 비중이 높은 거래 기업의 재무 비율을 유심히 살펴볼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환 기자 / 박창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