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속타도 기댔던 어머니, 불탄 의자로
2024-12-12 HaiPress
김승영 김종영미술상 수상전
모친 유품 태운 재도 활용
고인의 삶 기리는 작품 등
설치·영상 등 10여점 펼쳐
과거와 현재 '자화상' 연작
"쓰러지고,다시 일어나고
반복되는 게 우리들의 삶"
김승영 '두 개의 의자'(2024). 김용관
회백색의 잿더미 위에 불에 타 검게 그을려진 나무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 의자는 굳게 세워져 있지만,옆의 또 다른 의자는 쓰러질 듯하면서 그 의자에 기대어 있다. 의자의 주인도 그랬을까. 설치미술가 김승영(61)의 '두 개의 의자'(2024)는 작가가 평생을 생계와 살림으로 고생스럽게 살다 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김 작가는 "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셔서 사는 동안 속이 많이 탔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항상 기대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의자 아래 수북이 깔린 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실제 유품들을 태우고 남은 재를 활용해 연출한 것이다.
김승영 작가의 김종영미술상 수상 기념전 '삶의 다섯 가지 질문'이 내년 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별관 1·2·3 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는 뜻에서 삶의 의미를 다각도로 고찰한 작품들로 채워졌다. 작가의 대표적인 설치 작품인 의자 시리즈 신작 2점과 영상 7편,평면 작품 1점 등 총 1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김 작가는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단순한 형식으로 풍부한 내용을 전달한 점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 2022년 제16회 김종영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는 제 일기장을 펼쳐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병원을 다닐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었다. 도저히 작업을 이어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고민 끝에 돌아가신 어머니께 '저는 이렇게 살아요' 하고 내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시 제목인 '삶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을 특정해 놨다기보다는 오히려 열어 놓은 것에 가깝다"며 "관객분들이 작품을 보면서 저마다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3층 전시실에서는 직접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작품 3점을 선보인다. 설치 작품 '두 개의 의자' 옆에는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산책하는 뒷모습이 담긴 영상 작품 'Walk'(2024)를 병치했다. 김 작가는 "두 분이 길 모퉁이를 돌아선 뒤에도 주변 자연 경관은 그대로다. 흔적도 없이 왔다 가는,이런 게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시작 '보라'(2024)는 염(殮)용 천에 어머니의 임종 당시 마지막 심장 박동 그래프를 빨갛게 수놓아 완성한 것이다. 그는 "남은 유품은 전시가 끝나면 정말로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태우려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1층 전시실은 모든 벽면을 영상 설치 작품인 '자화상' 연작으로 채웠다. 자신의 실물 크기 전신 사진을 포스터처럼 벽면에 살짝 붙여 놓고,사진이 벽면에서 떨어지면 다시 그 포스터를 주워 벽면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반복하는 영상이다. 영상 속 포스터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지며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작가가 30대 시절 제작한 '자화상'(1999)과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지금,작가가 같은 방식으로 제작한 '자화상'(2024)이 서로 마주 보도록 전시했다. 김 작가는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게 우리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며 "과거엔 나이가 들면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60대가 된 지금도 쓰러지기는 마찬가지란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종영미술상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우성 김종영(1915~1982)의 뜻을 기려 1990년 제정됐다. 본래 장래가 유망한 젊은 조각가를 발굴하기 위한 상으로 출발했지만 2016년부터는 매일경제신문과 우성김종영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면서 대상 장르를 조각에서 회화,설치,미디어아트 등 전 미술 영역으로 넓혔고 나이 제한도 두지 않고 있다. 내년 11월 새로운 수상자를 찾는다.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