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먹구구 관·도급 규정에...잠수함사업서 한화오션 탈락
2025-08-01
HaiPress
한화 경쟁자인 LIG넥스원이 HD현대만 공급
‘K방산 원팀’ 시급한데 애매한 규정이 문제
‘기울어진 운동장’ 만들어...규정 정비 시급
3천t급 잠수함 3번함 ‘신채호함’ 인도·인수식 (연합뉴스) 최근 방산업계서 화두로 떠오르는 문제가 있다. 바로 ‘관·도급 분류’다. 관·도급이란 공공입찰 때 장비나 부품을 조달하는 방법 중 하나다. 관급은 물건을 발주한 정부 부처가 직접 자재를 구매하는 방안이고,도급은 정부 사업을 수행하는 업체가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방위산업의 경우 방위사업청이 무기에 들어가는 장비를 관급과 도급으로 분류한다. 문제는 이 분류 기준이 확실치 않다는 것. 특히 필수 장비가 도급 자재로 선정되면서,방산 업체끼리 물건 납품을 두고 얼굴을 붉히는 사례가 쏟아진다. ‘원팀’으로 협력해야 할 방산업체가 오히려 갈등을 빚는 것이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해군에 인도한 장보고-Ⅲ 배치(Batch)-Ⅰ3번함인 신채호함은 도급 장비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다. 신채호함은 2010년 기본설계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함수무장체계,연료전지체계,수직발사체계의 3종 장비를 도급 연구개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은 6440억원의 사업비 가운데 3종 장비 납품으로만 2150억원 정도가 청구됐다. 과도한 비용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한화오션을 상대로 부당이득금을 취했다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고,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다. 도급이 아닌 관급 장비로 채택,정부가 일괄 구매했다면 없었을 일이다.
최근에도 214급 잠수함(장보고-Ⅱ) 성능개량 사업에서 관·도급 문제로 공정한 경쟁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업은 소나 중심의 통합전투체계인 독일제 수중센서통합시스템(ISUS)을 국내 기술로 새로 개발해 대체하고,여기에 소나체계를 연동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소나체계 분야에서 독보적인 LIG넥스원의 장비를 확보하느냐,못하느냐가 입찰 참여업체에게는 수주와 실주를 가를 수 있는 중요 요소였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뢰회피 소나를 도급 연구개발한 LIG넥스원이 해당 장비의 견적을 자신들과 양해각서(MOU)를 맺은 HD현대중공업에만 제공했다”면서 “입찰 경쟁업체인 한화오션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짜여진 판에서 결국 수주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두고 일각에서는 ‘입찰의 공정성 훼손’,‘기술정보 독점’,‘입찰 담합’ 등의 뒷말이 나오지만,이는 사실상 정부와 업체의 잘못이 아닌 관·도급 규정이 만들어낸 제도의 허점”이라고 부연했다.
방산업계에서는 정부가 국내 방위사업에서 국내 기업들의 출혈 경쟁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K-방산의 미래를 위한 포석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국내 업체들의 첨예한 경쟁이 이어지며 진흙탕 싸움까지 번지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국내 방산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관·도급으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장보고-Ⅱ 성능개량 사업에서도 볼 수 있듯,특정 도급장비업체가 견적이나 장비의 제한적 공급 또는 미제공하는 경우에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하다”며 “더욱이 이런 불공정한 제약이 해외 장비 도입 등의 대안으로 연결되면 국익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방위사업에서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과 국가적 낭비요소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발비를 부담하는 장비나 체계는 관급 전환을 하거나 입찰에 참여한 모든 업체에 공평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